15년 만에 돌아온 전미도의 ’갈매기’, 현실과 이상 사이 위태로운 청춘 [MHN 공연직설]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 국립극단·충북도립극단 이어 맨씨어터가 선보이는 '새 버전'

(MHN 안지훈 기자) 전미도의 '갈매기'가 돌아왔다. 2011년 '갈매기'의 여자 주인공 '니나'를 연기한 지 무려 15년 만에 같은 역할로 무대에 섰다. 전미도의 개인 커리어에서 볼 때, 이번 작품은 8년 만에 이루어진 연극 복귀다.
연극 '갈매기'는 '러시아의 대문호'라 불리는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대표적인 장막극이다. 전미도가 무대에 올라 지난 9일부터 공연 중인 '갈매기'는 배우 우현주가 이끄는 극단 맨씨어터의 버전이다. 우현주는 2007년 설립된 극단 맨씨어터가 20주년을 앞둔 시기에 다시 한번 '갈매기'를 공연하고 싶었고, 특히 전미도의 니나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15년 만의 같은 작품·같은 배역을 제안 받은 전미도 역시 고향 같은 극단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담보다는 기대를 안고 출연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극단 맨씨어터의 '갈매기'는 1층 객석을 전부 걷어내는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 전형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공연하되, 제54회 동아연극상과 제9회 두산연강에술상을 수상한 '차세대 연출가' 김정의 실험적인 연출이 더해졌다. 특히 2막의 후반부에 이르러 무대에 물이 점점 차오르며 하나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연출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처럼 '갈매기'는 다양한 형태로 공연되고, 때로는 변형돼 왔다. 올해만 해도 지난 7월 국립극단과 충북도립극단이 공동 기획하고 김낙형 연출가가 지휘한 '갈매기'가 공연되었고, 지난 15~18일에는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퍼포먼스그룹153의 '갈매기 날다'가 국립극장에서 공연됐다.
올해 극장가에서 유독 '갈매기'를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범위를 극작가 자체로 넓히면 그야말로 '체호프 열풍'이다. 지난 5월 체호프의 또 다른 대표 장막극인 '바냐 아저씨'를 각색한 '바냐 삼촌'과 '반야 아재'가 각각 LG아트센터와 국립극장에서 공연됐다. '바냐 삼촌'을 통해 배우 이서진과 고아성이 연극 무대에 데뷔하며 화제가 됐고, 같은 시기 '반야 아재'에는 배우 조성하와 심은경이 출연하며 맞대결을 펼쳤다.


그렇다면 왜 올해 유독 '갈매기'가, 체호프의 공연이 많이 공연될까. 그건 아마 체호프 연극을 관통하는 특징과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 관객들에게 특히 더 유효하기 때문일 테다.
체호프의 연극에는 '사건'이 없다. '인물'이 있을 뿐이다. 이전 연극에는 혁명, 전쟁 등의 사건과 영웅, 배신, 결투 등의 소재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체호프는 이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그가 주목한 건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였다.
'갈매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이루는 뼈대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연극의 새 유형을 주장하는 젊은 극작가 '뜨라쁠레프'와 기성 예술가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인물들의 엇갈리는 사랑이다.
첫 번째 뼈대를 통해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세대 갈등'이 전면에 드러난다. 뜨라쁠레프는 연인 니나와 함께 새 연극을 선보이지만, 어머니이자 배우인 '아르까지나'와 기성 작가 '뜨리고린'에게 무시 당한다. 기성 세대이자 이미 예술계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젊은 뜨라쁠레프와 니나에게 자리를 내어주려 하지 않고, 뜨라쁠레프는 기존 연극을 적대시하며 자신의 시도에 지적 우월감마저 부여하려 든다. 하지만 청춘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무력해지기 쉽고, 또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좌절하기 일쑤다. 연극은 바로 이 좌절과 무력함이라는 감정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그려낸다.
두 번째 뼈대를 통해서는 인간 생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엿볼 수 있다. 극 중에서 뜨라쁠레프는 니나를 사랑하지만, 니나는 뜨라쁠레프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뜨리고린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뜨리고린도 한때 니나에게 마음을 주기도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거둔다. 뜨라쁠레프의 어머니인 아르까지나는 뜨리고린과 연인 사이지만, 뜨리고린이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외에도 마을 여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중년 의사 '도른'은 정작 사랑에 무심하다. 이처럼 엇갈리는 사랑과 변덕스러운 마음 역시 좌절과 회환의 감정을 전달한다.
연극은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흐르지만, 말미에 이르러 전미도의 니나가 선보이는 독백은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든다. 니나의 독백은 극의 초반에 구현됐던 뜨라쁠레프의 연극을 연상하게 만들며, 니나의 독백 이후 이어지는 뜨라쁠레프의 선택은 '갈매기'가 가진 정서와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이를 차근히 따라가다 보면 극 중 소재이기도 한 '갈매기'의 의미, 마지막에 물이 차올라 하나의 호수처럼 변하는 무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31일 막을 내리는 임철수·이동하·양소민·박호산 등 실력파 배우들이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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